4월혁명
- 대표어4월혁명
- 동의어4·19혁명, 4월민주혁명, 4·19민주혁명
- 유사어4·19민주항쟁, 4·19
- 관련어4·19의거, 4·19학생의거, ‘1960년 봄 혁명’
- ‘1960년 봄 혁명’이라는 명칭은 2월 28일부터 4월 26일 대통령 하야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기는 하나, 4·19를 정점으로 하는 4월혁명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관련어에 포함시킴.
- ‘4·19의거’의 경우 잘못 사용된 용례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이른바 ‘5·16혁명’이라는 명칭과 연동해서 사용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할 것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의 경우
- 4·19혁명’으로 호명하면서, 관련 주요 사건으로 ‘2·28대구학생시위(2·28대구민주화운동)’, ‘3·15마산시위(3·15의거)’, ‘4·18고려대생시위및피습사건’, ‘4월 19일시위’, ‘4·25대학교수단시위’, ‘제2차마산시위’ 등의 순서로 서술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 속의 ‘4·19’의 경우
- 1961년 5·16쿠데타 이후 1962년 5차 개헌 때 헌법 전문에 ‘4·19의거’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 신군부의 쿠데타 이후 1980년 8차 개헌 때는 사라진다.
- 1987년 9차 개헌 때 헌법 전문에 ‘4·19민주이념’이라는 표현으로 다시 등장한다.
- 1962년 5차 개정 헌법 (1962.12.26.)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 1969년 6차 개정 헌법 (1969.10.21.)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 1972년 7차 개정 헌법 (유신헌법 1972.12.27.)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 1980년 8차 개정 헌법 (1980.10.27.)
- 유구한 민족사, 빛나는 문화, 그리고 평화애호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
- 1987년 9차 개정 헌법 (1987.10.29.)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1960~70년대 4월혁명 관련 <단행본> 및 주요 <월간지> 제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단행본 >
- 민영빈 편, 「4월의 영웅들 : The April Heroes」 (시사영어사, 1960)
- 동아일보 이강현 편, 「민주혁명의 발자취 : 전국 각급학교 학생대표의 수기」 (정음사, 1960)
- 김재희 편, 「청춘의혈 : 역사를 창조한 젊은 사자들 - 광주 4·19학생의거 전모」 (호남출판사, 1960)
- 서병조, 「주권자의 증언」 (모음출판사, 1963)
- 이상로 편, 「피어린 4월의 증언 : 4·19민주혁명 문학선」 (연학사, 1960)
- 4월혁명동지회, 「4월혁명」 (4월혁명동지회출판부, 1965)
- 동아일보사, 「민주혁명의 기록」 (1960)
- 4월혁명청사편찬회, 「한국민주4月革命靑史」 (성공사, 1960)
< 월간지 >
(신동아)
- 선우휘, 「특집: 역사로서의 4·19-5년만의 조사」, 1965년 4월호.
- 강인섭, 「4월혁명 후기」, 1965년 4월호.
- 길현모 외, 「토론 : 60년대를 평가한다」, 1969년 12월호.
- 김성환 외, 「죄담회 : ‘참여의 4월’에 서서」, 1970년 4월호.
- 이경남, 「4·19학해(學海)의 노도」, 1972년 4월호.
(새벽)
- 신상초, 「학생도 인간이요 시민이다」, 1960년 4월호.
- 「선거라는 이름의 3·15행사 만평」, 1960년 4월호.
- 이강현, 「생생한 현지루포 : 당신은 누구의 편이요?」, 1960년 5월호.
- 김수영, 「자유란 생명과 더불어」, 1960년 5월호.
- 「특집: 외국인의 3·15 평」, 1960년 5월호.
(기독교사상)
- 홍현설, 「4·19에서 얻은 교훈」, 1960년 6월호.
- 김재준, 「4·19의 회고와 전망」, 1962년 4월호.
- 박상증, 「아세아의 젊은 표정」, 1962년 4월호.
(사상계)
- 김팔봉, 「부정선거와 예술인의 지성」, 1960년 5월호.
- 김상협 외, 「좌담회: 민주정치 최후의 교두보 - 3·15 선거 후의 정국 전망」, 1960년 5월호.
- 김승태 외, 「좌담회: 노한 사자들의 증언」, 1960년 6월호.
- 유진오, 「폭풍을 뚫은 학생제군에게」, 1960년 6월호.
- 김성식, 「학생과 자유민권운동」, 1960년 6월호.
- 이만갑, 「군인-침묵의 데모대」, 1960년 6월호.
- 신상초, 「이승만 폭정의 종언: 4·26은 혁명의 종말이 아니라 시발점이다」, 1960년 6월호.
- 민석홍, 「현대사와 자유민주주의: 4월혁명의 이해를 위하여」, 1960년 6월호.
- 안병욱, 「리(利)의 세대와 의(義)의 세대」, 1960년 6월호.
- 유달영, 「4·19와 민족의 장래」, 1960년 6월호.
- 고병익, 「‘혁명’에서 ‘운동’으로」, 1960년 6월호.
- 부완혁, 「혁명의 현단계와 금후(今後)」, 1960년 6월호.
- 이범석, 「학생혁명의 결실을 위하여」, 1960년 6월호.
- 송원영, 「경무대의 인의 장막」, 1960년 6월호.
- 장 면, 「나의 부통령직 4년(상)」, 1960년 6월호.
- 이회백 외, 「4·19의 수기」, 1960년 6월호.
- 홍이섭, 「혁명후 1년: 4월혁명의 재평가」, 1961년 4월호.
- 조가경, 「혁명주체의 정신적 혼미」, 1961년 4월호.
- 김성태, 「4월19일의 심리학」, 1961년 4월호.
- 신일철, 「소리없는 혁명」, 1961년 11월호.
- 신상초 외, 「주도세력 없는 혁명은 정변에 불과」, 1962년 4월호.
4월혁명 관련 주요 연구성과를 보면, ‘4월혁명’, ‘4월민주혁명’, ‘4·19 민주항쟁’, ‘4·19 혁명’ 등의명칭으로 호명하고 있다.
- 박명림, 「4월혁명과 5·16군사쿠데타에서 미국의 역할」,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 113호, 2015년.
- 민유기, 「서양의 4월혁명 인식과 그 세계사적 의미」,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사총>, 71권. 2010년.
- 조대엽, 「4월혁명의 순환구조와 6·3 항쟁」,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한국과 국제정치>, 26권 2호, 2010년.
- 홍석률, 「4월혁명과 이승만 정권의 붕괴 과정」,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36권, 2010년.
- 고원, 「헌정체제론의 시각에서 본 4월혁명의 역사적 기원」,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한국정치연구>, 19권 2호, 2010년.
- 홍원표, 「4월 민주혁명과 혁명정신의 역사적 재현 문제」, 한국정치정보학회, <정치정보연구>, 13권 1호, 2010년.
- 양길현, 「반정부 시위의 정치동학 차이 비교: 한국의 4·19 민주항쟁과 버마의 샤프론혁명」,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한국정치연구>, 20권 1호, 2011년.
- 강신준, 「4·19 혁명 시기 노동운동과 노동쟁의의 성격」, 한국산업노동학회, <산업노동연구>, 8권 2호, 2002년.
- 김명인, 「혁명과 반동, 그리고 김수영: 4·19 혁명과 김수영의 정치의식」,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19권 19호,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