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4·25 교수단 시위

정국은 4월 25일 대학 교수들이 데모에 나서면서 급속히 변하였다. 4월 19일 학생들의 엄청난 희생을 지켜본 교수들은 죄 없는 학생들만 희생시켰다는 자책감 때문에 여간 괴로워하지 않았다.

시위에 나선 서울 시내 각 대학교수들

어찌보면 1960년 4월 19일 이후 숨가쁘게 움직이던 정국은 이승만의 자유당 총재직 사퇴와 이기붕의 공직 사퇴, 계엄사령부의 민심수습 노력 등으로 인해 그런대로 어떤 해결점에 접근하는 듯 보였다. 격앙되었던 분위기도 표면적으로는 제법 가라앉아 가는 듯 싶었다.

그러나 정국은 4월 25일 대학 교수들이 데모에 나서면서 급속히 변하였다. 4월 19일 학생들의 엄청난 희생을 지켜본 교수들은 죄 없는 학생들만 희생시켰다는 자책감 때문에 여간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뜻이 통하는 교수들끼리 20일 밤부터 은밀히 만나 행동방향을 협의하였다. 이종우(고려대), 이희승(서울대), 정석해(연세대), 조윤제(성균관대) 등 주동 교수들은 4월 25일 오후 3시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회의를 강행하기로 하였다.

25일 오후 5시 30분, 이승만의 대통령직 하야 요구를 골자로 하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고 참석자 258명 전원이 서명하였다. 대학교수단시국선언문은 3,4월 시위를 최초로 평가했고, 그때까지 있었던 시위 학생 ․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집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대학 교수단 시국선언문

이번 4·19의거는 이 나라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대한 계기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규정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이 비상시국에 대처하여 우리는 이제 전국대학교수들의 양심에 호소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 마산·서울·기타 각지의 학생 데모는 주권을 빼앗긴 국민의 울분을 대신하여 궐기한 학생들의 순진한 정의감의 발로이며, 부정과 불의에는 항거하는 민족정기의 표현이다.
  • 이 데모를 공산당의 조종이나 야당의 사주로 보는 것은 고의의 곡해이며, 학생들의 정의감의 모독이다.
  • 평화적이요 합법적인 학생데모에 총탄과 폭력을 기탄없이 남용하여 대량의 유혈참극을 빚어낸 경찰은 민주와 자유를 기본으로 한 국립경찰이 아니라 불법과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일부 정치집단의 사병이다.
  • 누적된 부패와 부정과 횡포로써의 민족적 대 참극, 대 치욕을 초래케 한 대통령을 위시하여 국회의원 및 대법관 등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으면 국민과 학생들의 분노는 가라앉기 힘들 것이다.
  • 3·15선거는 불법선거이다. 공명선거에 의하여 정·부통령선거를 다시 실시하라.
  • 3·15부정선거를 조작한 주모자들은 중형에 처해야 한다.
  • 학생살상의 만행을 위에서 명령한 자 및 직접 하수자는 즉시 체포 처결하라.
  • 모든 구속학생은 무조건 석방하라. 그들 중에 파괴 또는 폭행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동료피살에 흥분된 비정상상태 하의 행동이요, 폭행 또는 파괴가 그 본의가 아닌 까닭이다.
  • 정치적 입지를 이용 또는 권력과 결탁하여 부정축재한 자는 관·군·민을 막론하고 가차없이 적발, 처단하여 국가기강을 세우라.
  • 경찰은 학원의 자유를 보장하라.
  • 학원의 정치도구화를 배격한다.
  •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사이비 학자와 정치도구화 하는 소위 문인·예술인을 배격한다.
  • 학생 제군은 38선 너머 호시탐탐하는 공산괴뢰들이 군들의 의거를 선전에 이용하고 있음을 경계하라. 그리고 이남에서도 반공의 이름을 도용하던 방식으로 군들의 피의 효과를 정치적으로 악이용하려는 불순분자가 있음을 조심하라.
  • 시국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여 학생들은 흥분을 진정하고 이성을 지켜 속히 학업의 본분으로 돌아오라.


단기 4293년 4월 25일
대학교수단

1960년 4월 25일 오후 5시 50분, 교수들은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거리로 나섰다. 데모 행렬이 종로 4가를 지날 무렵, 뒤따르는 학생과 시민들은 7~8천 명을 넘어섰고, 시위대가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했을 때에 시위대는 4-5만명으로 불어났다. 오후 6시 50분경, 교수단은 이 날의 목표지점인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여 시국선언문을 다시 한 번 낭독하고 만세삼창과 애국가를 부른 뒤 해산하였다.

>
팝업창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