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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시설 현황

총 22건의 4월혁명 기념시설 자료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4․19혁명 전무영 열사 추모비 프린트 목록

주요 대상
전무영(1960년 4․19혁명 당시 광화문에서 순직)
위치(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여좌로 100, 진해중고 정문 좌측 운동장 옆길 진해고 방향
위도
35도 09분 36.43초
경도
128도 39분 47.17초
선정 이유
모교
토지 소유주
진해중고등학교
주위 환경
-
유관 시설
◦ 중앙대 추모조형물(의혈비) ◦ 국립4․19민주묘지 ◦ 4․19혁명기념도서관
건립일
2010년 04월 19일
형태(외형)
추모비
재질
석재
규모(크기)
추모비 상단 146*25*136㎝, 기단 150*54*32㎝
건립 주체
진해중․고등학교 총동창회 등
관리(운영) 주체
진해중․고등학교
전면

4.19혁명
전무영 열사 추모비
진해중 7회․진해고 11회

이 나라 이 겨레의 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해 그대 흘리신 거룩한
피여 길이 영광되리라

1960. 4.19 김달진 지음

4․18 Memorail Hall

시대적 배경

◦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
-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선거를 부정으로 일관하여 국민의 공분을 사고, 저항을 불러일으킴
- 정권 연장을 위해 초법률적인 통치권을 행사함

사건적 배경

◦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들의 반 이승만․자유당 시위가 발생
◦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일에 마산에서 학생 및 시민들과 민주당이 주도한 시위 발생(제1차 마산의거)
- 오후 2시 30분경 시작된 이날 시위는 경찰의 발포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시민들은 파출소를 비롯해 관공서를 공격했음.
◦ 1960년 4월 11일 마산시 신포동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김주열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제2차 마산의거(4. 11-13) 발발
- 4월 11일 시민들은 도립병원에 경찰이 안치한 시신의 인도를 요구하며 경찰서를 포위하는 등 시위를 벌임
- 4월 12일 마산고교, 마산상고, 마산공고 등의 학생 3,000여 명과 시민 1만 여명이 시내 일원에서 시위를 갖고, 도립마산병원에 집결 해산. 당일 밤에는 1만여 명이 마산경찰서 앞에 집결 시위 해산
- 4월 13일 해인대학(현 경남대학) 학생 200여 명이 시내 일원에서 시위. 당일 밤 김주열의 사체는 고향 남원으로 이송
◦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주도한 도심 시위 발생
◦ 1960년 4월 19일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지역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 발생
◦ 자유당은 장면타도, 이기붕 당선을 위해 관권, 금권, 폭력, 매수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부정투표, 환표 부정, 부정개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을 실시하여 승리했으나, 결국은 정권의 몰락으로 귀결되었음

현재 평가

◦ 한국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으로 위상 정립
◦ 1963년 9월 서울특별시 수유동에 4․19묘지가 조성되었고, 1995년 4월에 「국립4․19민주묘지」를 재조성함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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