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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시설 현황

총 22건의 4월혁명 기념시설 자료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3․15義擧 詩가있는길 프린트 목록

주요 대상
마산 3․15의거
위치(주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성역로 75, 국립 3․15민주묘지 진입로 입구부터 정문 사이
위도
35도 14분 53.07초
경도
128도 35분 14.43초
선정 이유
국립 3․15민주묘지 진입로
토지 소유주
창원시
주위 환경
-
유관 시설
◦국립 3․15민주묘지
건립일
2010년 03월 15일
형태(외형)
자연석
재질
석재
규모(크기)
시비 표지석 120*50*210㎝, 기단 152*154*45㎝
건립 주체
(사)3․15의거기념사업회
관리(운영) 주체
(사)3․15의거기념사업회
전면

<표지석>
3․15義擧 詩가있는길

<알림석>
취지문
1960년 3월 15일!
이날은 이승만 독재정권이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부정선거를 저지르자 마산 시민과 학생들이 맨몸으로 분연히 떨쳐 일어나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낸 거룩한 민주화운동의 첫날이다.
그 자랑스러운 3․15의거의 희생과 동력이 있었기에 4월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의 민주화 역정이 가능했으며, 오늘날 자유․민주․정의 사회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3․15의거 50주년과 국가기념일 제정 원년에 그날의 함성과 감격을 시로 승화시켜 노래한 10편의 3․15의거시를 가려 뽑아 빗돌에 새긴 뜻은 3․15의거의 민주정신이 우리나라 미래의 희망이 되도록 민주화운동 첫날의 순결한 표징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이 길 따라 시를 읽으며 가는 사람들이여!
여기에 마산사람의 불멸하는 민주혼이 서려있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그대들 마음도 이 길 따라 함께 포개지면서 3․15의거의 큰 역사를 품게 될 것이다.

2010.3.15
(사)3․15의거기념사업회
회장 백 한 기

후면
이 곳 빗돌은 친환경 자연석으로 경상남도와 마산시의 후원, 그리고 국립 3․15민주묘지관리소의 협조로 조성되었으며, 표지석 글은 서예가 화곡 박동철 선생이 쓰셨고 시비 건립은 대성석공장 김인규님이 시공하였습니다.

1) 鎭魂曲(진혼곤)
-馬山 희생자를 위하여
구상
손에 잡힐 듯한 봄하늘에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이듯이
피 묻은 사연일랑 아랑곳 말고
형제들 넋이여, 평안히 가오.

광풍(光風)이 휘몰아치는 쑥대밭 위에
가슴마다 일렁이는 역정(逆情)의 파도
형제들이 튀워놓은 외가닥 길에
오늘도 자유의 상렬(喪列)이 꼬리를 물었오.

형제들이 뿌리고 간 목숨의 꽃씨야
우리가 기어이 가꾸어 피우고야 말리니
운명보다도 짙은 그 바램마저 버리고
어서, 영원한 안식의 나래를 펴오.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2010년 3월 상곡 이재덕 쓰다

具常(1919~2004)
함남 문천 産
1964년 동인지 “응향(凝香)” 등단
<출처, 항쟁의 광장 1960.6.10.>

2) 진달래
김광림

뉘의 모습을랑 비스듬히 닮았을
진달래야 진달래

빝두리 발가승에 채색도 모르고
조국이 꽃이라서
모질게도 피던구나

그날 꽃가루 날라간
애띈 넋을 닮아서
상채기 붉은 피도 고운데
노성 앞장만 서다
쓰러진 너희들‥‥‥

죽어서도제모습을꼬옥닮아서
속닢도 퍼지기 전에
떨어져 버렸구나

진달래야 진달래

삼일오 오십주년을 맞이하여
이천십년 삼월에 한메 조현판 쓰다

김광림(1929~ ),
함남 원산 産
1948년 “연합신문” 등단
<출처 : 뿌린 피는 영원히 1960.5.19.>

3. 창동불종거리 1

황선하

마산에 살고 있으면서
마산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하던 일 팽개치고
훌쩍 창동 불종거리로 나갑니다.
창동 불종거리는,
문명의 공해로
나날이 병이 깊어가는
마산의,
아직은
따뜻한
어머니 젖가슴.
마산사람이 아니라도
창동 불종거리에 오면
다정다감한
마산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창동 불종거리에선
모두가
낯익은 이웃 같아 보입니다.
창동 불종거리를 메운
선남선녀의 물결에 섞여,
천진한 아이처럼
여기저기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걷노라면,
살아 있음이
눈물겹도록 고맙게 느껴집니다.

3․15의거 50주년에 즈음하여
이천십년 잣뫼 엄태화 씀

黃善河(1931~2001),
경북 감포 産,
1962년 “현대문학” 등단.
<출처 : 이슬처럼 1988.3.20.>

4. 哀歌(애가)
故 金朱烈靈前에
이영도

눈에 포탄을 박고 머리엔 맷자욱에 찢겨
남루히 버림 받은 조국의 어린 넋이
그 모습 슬픈 호소인양 겨레 앞에 보였도도

행악이 사직을 흔들어도 말없이 견뎌온 백성
가슴 가슴 터지는 분노 천둥하는 우레인데
돌아갈 하늘도 없는가 피도 푸른 목숨이여!

너는 차라리 義의제단에앳된속죄羊
자욱자국피맺힌歷史의旗빨위에
그 이름 뜨거운 숨결일네 퍼득이는 蒼空에!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2010년 3월 竹史 권용완 쓰다

李永道(1916~1976),
경북 청도 産,
1945년 동인 “竹筍” 등단,
<출처 : 국제신보 1960. 4.19>

5. 역시 마산은 이 땅의 변방이 아니라는…
이선관

한 번 의미를 찾았고
다시 의미를 찾았고
또다시 의미를 찾으려는
이 고장의 자랑스러운
창동 네거리에서 고개를 서쪽으로
돌려 보고 시외 주차장으로
걷노라면 우뚝 멈춰지는 발걸음
여기가 구암동 애기봉 중턱
아직도 두 눈 부릅뜨고 누워있는
아 1960년 3월 15일 그날
죽어도 살아 있음이여
마산의 열두 제자들
그 이름을 기억하라
김영길 김용실 김영준 김영호
김효덕 김종술 김삼웅 김주열
김평도 김의규 오성원 강융기
우리는 잃어버리진 않는다
역시 마산은
마산의 열두 제자가 있는 한
이 땅의 변방이 아니라는 걸
알고 만다.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2010년 3월 금난 곽봉련 쓰다

이선관(1942~2005),
경남 마산 産
1971년 “시의소리” 등단,
<출처 : 창동허새비의 꿈 1994.11.30.>

6. 招魂(초혼)
전용태

서러움이 오래 익어온 江邊에
뚝을 건너면
오랜 인욕의 나날들이
지금은 아직도 山嶽처럼
안으로 안으로만 이어갈
숨을 쉬고 있을까

꽃처럼 붉은 나의 마음이라면
이제 밤하늘 銀河는어디로흐른다냐
서러운 魂아
외로운 나무들처럼하고
지금은 않아있다 고냐
사뭇 不自然한데로
그래도 아직 바다는 짓푸른데

바람이 아직도 부르고 싶은 이름이
오, 이 가슴을
외롭게 키워 온
이 내 가슴을
차라리 여기
바위처럼하고 안으로 설레임을
키워 보련다

하늘에 구름이
외롭지 않다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2010년 3월 한샘 구경숙 쓰다

全容泰(불명)
1961.3.15
제1회 3․15의거기념
한글백일장 일반부 장원 수상자
<출처 : 마산일보 1961.3.19.>

7. 자유․민주․정의의 고향
박종해

해마다 봄소식 먼저 전해주는
남쪽 마산
부정한 것 부패한 것들을
태우는 불길이
방방곡곡으로
폭죽처럼 퍼져간 곳.

그 이글거리던
절규와 함성의 용광로.
민주의 불을 지피다가
불꽃처럼 승화한
젊은 꽃봉오리들.
민주화의 열매를
이 땅에 맺어놓고
길이 청사에 살아 숨쉰다.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이천십년 삼월 은산 순수조 쓰다

朴宗海(1942~ ),
울산 産
1980년 “세계의문학” 등단
<출처 : 깃발 함성 그리고 자유>
1990. 3. 10

8. 죽어 말하는 나무들에게
변승기

오래 불러보지 못한 노래를
해마다 3월이면
아픈 기억으로 오는 그대를
지금은 죽어 말하는 나무되어
어깨를 펴며 서서히 일어서고 있네.

보리 한 알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 맺으리니
죄 없는 죄인 되어
헌 누더기 걸친 채 조용히 잠들던 날
어머님, 가장 괴로워하며 들려주시던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이제 거두어 주십시오.

마다한 그 고운 이름
별의 시간 위로 찬란히 빛나고
당신의 눈물 속에 깃드는 사랑처럼
헐벗은 조국의 굶은 올실이 되어
천(千)의 눈, 만(萬)의 가슴을 잇는
어머님, 푸른 깃발을 흔들며
영원히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죽어 말하는 저 나무들을 보십시오.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2010년 3월 竹山 卞榮 쓰다

卞勝己(1945~ ),
경남 마산 産
1984년 “현대문학” 등단
<출처 : 마산일보 1972.3.16.>

9. 애기봉 산자락엔
최영학

구름도 고개 숙이는
애기봉 푸른 자락엔
초롱초롱 눈 맑은
형님들이 누워 있다
독풀들이 자라는
썩은 땅 갈아엎어
바른 나라 밝은 세상
다 함께 세우자고
목청껏 소리치다
가슴에 붉은 꽃잎 달고
쓰러진 형님들이
거친 숨 다스리며
나란나란 누워 있다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세상을 내려다보며
때론 한숨도 쉬지만
손에 손잡은 띠풀들이
온 뫼를 푸르게 끌어안 듯
새날을 꼭 밝아 오리라
꿈 담은 눈 감지 않고
부활 예비하며 누워있다
애기봉 날로 푸르러진다.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2010년 3월 바다 한동조 쓰다

崔明鶴(1952~2006),
강원 홍천 産
1980년 “월간문학” 등단
<출처 : 가고파 내 고향 노래> 1999. 10. 9

***. 남원땅에 잠들었네
작사 : 차경철
작곡 : 한복남
노래 : 손인호
(대사 : 왕숙랑)

1. 원통하게 죽었고나 억울하게 죽었고나
몸부림친 3․15는 그 누구가 만들었나
마산시민 흥분되어 총칼 앞에 싸울 적에
학도겨레 장하도다 잊지 못할 김주열
무궁화 꽃을 안고 남원땅에 잠들었네

2. 남원땅을 떠날 적에 성공빌던 어머니는
애처로운 죽엄안고 목메어 슬피울 때
삼천겨레 흥분되어 자유 민족 찾으려고
학도겨레 장하도다 잊지못할 김주열
무궁화 꽃을 안고 남원땅에 잠들었네

대사․주열아 남원땅을 떠나 마산에서 공부하여
성공한다던 네가 죽다니 왠말이냐
그러나 내 아들아 장하다 지금은 슬프지도 않다.
네가 원하고 원하던 우리 민족의 자유는
학생들의 힘으로 찾고야 말았단다.
아! 주열아 주열아

노래비 건립 취지문

1960년 3월 15일 밤 항쟁에서 행방불명되었던 김주열군이 4월 11일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중앙부두에 떠오르고 4월 13일 시신이 고향 남원으로 운구되는 모습을 지켜본 차경철 선생님은 이 노래를 작사하여 한본남 선생님이 작곡, 손인호 가수가 불러 공전의 대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 이후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사라졌습니다만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이 노래를 빗돌에 새겨 김주열 열사의 투혼과 3․15의거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자 합니다.
작사가 차경철 선생님은 1936년 경남 울주군에서 태어나 도미도레코드사 전속 작가로 활동, 대표곡 「님」, 「아리랑처녀」 등 70여편의 히트곡을 작사하였습니다.
2010.7
(사)3․15의거기념사업회
회장 백한기

10. 그리움에게
정규화

날마다 와도 아쉬운 판에
일년에 한 번씩 오다니
차비가 없어서 그러냐
천성이 게을러서 그러냐
나뭇가지마다 잎새는 피었다만
네가 뛰어 놀던
산도 있고 들도 있다만
어디 가서 딴 살림 하느냐
일년에 한 번씩 와서
인사치레만 하고 달력 속으로 지는 해는
마산에는 헤어졌던
네가 아니다 공중에서 펄럭인다고 다 그날의
그리움이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너를 모르겠느냐
해가 뜬 다음에도 오지 않더니
꽃이 핀 다음에도 오지 않은 너를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2010년 3월 심천 주상완 쓰다

鄭奎和(1949~2007),
경남 하동 産
1981년 13인 시집
“우리들의그리움” 등단
<출처 : 4월혁명기념 시 전집>
1983. 5. 5.

4․18 Memorail Hall

시대적 배경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
-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선거를 부정으로 일관하여 국민의 공분을 사 고, 저항을 불러일으킴
- 정권 연장을 위해 초법률적인 통치권을 행사함

사건적 배경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들의 반 이승만․자유당 시위가 발생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일에 마산에서 학생 및 시민들과 민주당이 주도한 시위 발생(제1차 마산의거)
- 오후 2시 30분경 시작된 이날 시위는 경찰의 발포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시민들은 파출소를 비롯해 관공서를 공격했음.
◦1960년 4월 11일 마산시 신포동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김주열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제2차 마산의거(4. 11-13) 발발
- 4월 11일 시민들은 도립병원에 경찰이 안치한 시신의 인도를 요구하며 경찰서를 포위하는 등 시위를 벌임
- 4월 12일 마산고교, 마산상고, 마산공고 등의 학생 3,000여 명과 시민 1만 여명이 시내 일원에서 시위를 갖고, 도립마산병원에 집결 해산. 당일 밤에는 1만여 명이 마산경찰서 앞에 집결 시위 해산
- 4월 13일 해인대학(현 경남대학) 학생 200여 명이 시내 일원에서 시위. 당일 밤 김주열의 사체는 고향 남원으로 이송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주도한 도심 시위 발생
◦1960년 4월 19일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지역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 발생
◦자유당은 장면타도, 이기붕 당선을 위해 관권, 금권, 폭력, 매수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부정투표, 환표 부정, 부정개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을 실시하여 승리했으나, 결국은 정권의 몰락으로 귀결되었음

현재 평가

◦한국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으로 위상 정립
◦국립3․15민주묘지가 2002년 10월에 완공되고, 2003년 3월 15일에 3·15기념관이 개관함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기념행사 개최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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