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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시설 현황

총 22건의 4월혁명 기념시설 자료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마산 4․19혁명 표지석 프린트 목록

주요 대상
마산에서의 4․19혁명 궐기
위치(주소)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3가 3, 마산의료원 입구 좌측 벤치 앞
위도
35도 11분 56.23초
경도
128도 34분 01.51초
선정 이유
4․19혁명 현장
토지 소유주
마산의료원
주위 환경
-
유관 시설
-
건립일
2011년 01월 20일
형태(외형)
표지석
재질
석재
규모(크기)
표지석 100*11(30)*70㎝, 기단 120*50*25㎝
건립 주체
제5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
관리(운영) 주체
-
전면

4․19혁명의 진원지
1960년 자유당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오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항쟁이 전개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의로운 마산시민의 투쟁정신은
곧 4․19혁명 승리의 시발점이 되었다.
2011.1.20
제5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

4․18 Memorail Hall

시대적 배경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
-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선거를 부정으로 일관하여 국민의 공분을 사 고, 저항을 불러일으킴
- 학원의 병영화와 극우반공주의 교육풍토를 조성

사건적 배경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들의 반 이승만․자유당 시위가 발생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일에 마산에서 학생 및 시민들과 민주당이 주도한 시위 발생
◦1960년 4월 11일 마산시 중앙부두에서 김주열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제2차 마산사건 발발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주도한 도심 시위 발생
◦1960년 4월 19일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지역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 발생
- 서울 시내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학생 등 3만 여명이 총궐기 한 후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 오후 1시 40분경 진로를 경무대로 잡아 입구까지 이동함. 경찰의 총격으로 십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
◦부산에서는 3월 7일 고등학생 20여 명이 시위를 전개하려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유인물 등이 압수당함
- 3월 12일 해동고등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시위를 벌임. 이후 간헐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함
- 4월 18일에는 동래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벌임
- 4월 19일 경찰이 총탄을 발사하여 부상자가 속출하고, 경남공고생 강수영이 사망함
- 4월 20일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신정융은 오후 1시 20분경 부산진 경찰서 앞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발표

※ 4월 22일 경상남도가 발표한 사망자수와 부상자수
- 사망자 23명, 부상자는 입원이 51명, 통원환자가 119명(여기에는 경찰67명, 소방대원 6명, 일반 46명 포함)
- 이 당시 부산시에서 사망한 사람은 13명, 부상자는 170여 명이었음

현재 평가

◦한국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으로 위상 정립
◦1963년 9월 서울특별시 수유동에 4․19묘지가 조성되었고, 1995년 4월 에 「국립4․19민주묘지」를 재조성함

4․19혁명 50주년에 전국 주요 4․19혁명 사적지 8곳에 표지석 설치
◦11.17 대구 중구 동성로 중앙치안센터
◦11.25 대전 대전역과 목척교 사이
◦11.26 전북 전주시 전북대 서문 옆
◦12.01 충북 청주시 북문로대로 영동삼거리
◦12.03 부산 부산진구 서면 로터리
◦12.06 경남 창원시 마산의료원 앞
◦12.07 광주 금남공원 입구
◦12.10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전 국회의사당 앞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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