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시설 현황
총 22건의 4월혁명 기념시설 자료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주요 대상
- 부산에서의 4․19혁명 궐기
- 위치(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새싹로1 부산은행 앞, 서면역 11번출구 부산은행 앞
- 위도
- 35도 09분 29.96초
- 경도
- 128도 03분 30.78초
- 선정 이유
- 4․19혁명 현장
- 토지 소유주
- 부산광역시
- 주위 환경
- 건너편에 정호승 시비(봄길)가 있음
- 유관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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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립일
- 2010년 12월 03일
- 형태(외형)
- 표지석
- 재질
- 석재
- 규모(크기)
- 표지석 100*11(30)*70㎝, 기단 120*50*25㎝
- 건립 주체
- 제5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
- 관리(운영) 주체
- -
4․19혁명의 진원지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학생 수천명이 1960년 3월 이곳에서 여러번
시위하였고 그 결과 4․19혁명이 일어났다.
2010.12.3 설치
제5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
◦정권 연장을 위해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초법률적 통치권을 행사한
이승만 정권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들의 반 이승만․자유당 시위가 발생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일에 마산에서 학생 및 시민들과 민주당이 주도한 시위 발생
◦1960년 4월 11일 마산시 중앙부두에서 김주열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제2차 마산사건 발발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주도한 도심 시위 발생
◦1960년 4월 19일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지역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 발생
- 서울 시내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학생 등 3만 여명이 총궐기 한 후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 오후 1시 40분경 진로를 경무대로 잡아 입구까지 이동함. 경찰의 총격으로 십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
◦부산에서는 3월 7일 고등학생 20여 명이 시위를 전개하려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유인물 등이 압수당함
- 3월 12일 해동고등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시위를 벌임. 이후 간헐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함
- 4월 18일에는 동래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벌임
- 4월 19일 경찰이 총탄을 발사하여 부상자가 속출하고, 경남공고생 강수영이 사망함
- 4월 20일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신정융은 오후 1시 20분경 부산진 경찰서 앞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발표
※ 4월 22일 경상남도가 발표한 사망자수와 부상자수
- 사망자 23명, 부상자는 입원이 51명, 통원환자가 119명(여기에는 경찰 67명, 소방대원 6명, 일반 46명 포함)
- 이 당시 부산시에서 사망한 사람은 13명, 부상자는 170여 명이었음
◦한국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으로 위상 정립
◦1963년 9월 서울특별시 수유동에 4․19묘지가 조성되었고, 1995년 4월 에 「국립4․19민주묘지」를 재조성함
4․19혁명 50주년에 전국 주요 4․19혁명 사적지 8곳에 표지석 설치
◦11.17 대구 중구 동성로 중앙치안센터
◦11.25 대전 대전역과 목척교 사이
◦11.26 전북 전주시 전북대 서문 옆
◦12.01 충북 청주시 북문로대로 영동삼거리
◦12.03 부산 부산진구 서면 로터리
◦12.06 경남 창원시 마산의료원 앞
◦12.07 광주 금남공원 입구
◦12.10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전 국회의사당 앞
◦서면 로터리 도로변에 있으나 눈에 잘 보이지 않음